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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society

6월29일의 위선

1987년 6월, 내가 5살이었을때.

1987년 전과 후를 기억하는 이라면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졌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87년 6월28일 저녁까지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는 ‘폭도’였고 운동의 맨 앞에 서 있었던 세력은 ‘좌경 용공’이었다.
방송에 신문에 주류 종교 집단 등 모든 기성 세력들은 운동 세력이 ‘4·19와 같은 순수함을 잃고
정치적·이념적으로 변질’되었고 ‘불순한 배후 세력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질타해 마지않았다.
그러다가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직선제 수용 발언을 하자마자 갑자기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좌경 용공 세력’은 졸지에 ‘민주화 운동 세력’이 되었고, 군대의 투입이 논의될 만큼의 ‘사회 불안’은 갑자기
‘6월 항쟁’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얻어 쓰게 되었다. 

원글 - 6월29일의 위선, 한겨레21 725호,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2008년 6월의 촛불은 물대포에 꺼져버렸고, 여전히 '친북좌파'를 배후로 둔 '폭도'로 기록될 뿐이다.
1987년과 2008년의 차이점은 뭘까? "먹고살기힘들어서,먹고살만해서" 라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닐것 같은데,
'민주화'와 '검역주권'의 차이인가? 요즘 상황을 보면, 다시 '민주화'를 부르짖을때도 되지않았나 싶기도한데 말이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노동운동가들을 잡아갔습니다.
나는 이때도 역시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카톨릭 교도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나를 위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  마틴 니묄러(Martin Niemoeller)